클리티아의 욕망 - 왕영미 개인전

해바라기는 예나 지금이나 희망과 부의 상징으로 인식되면서 일반인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아온 꽃이다. 특히 황혼 들녘의 해바라기밭은 석양의 색과 어울려 장관을 이룬다. 이러한 점들이 왕영미 작가의 해바라기 작품이 미술애호가들로부터 많은 사랑을 받아오는 이유 중 한 부분이 아닐까 생각한다. 그러나, 왕영미 작가의 해바라기는 단순히 해바라기가 갖는 형상성에 그치지 않는다. 이 작가의 해바라기 속에 내재한 근본적인 키워드는 바로 ‘욕망’이라는 것이다. 그것은 해바라기의 신화와 상징성으로부터 찾을 수 있다.해바라기 신화는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물의 요정 클리티아와 태양의 신 헬리오스의 사랑 이야기다. 클리티아와 헬리오스는 서로 사랑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헬리오스의 마음은 어느새 페르시아 왕, 오르카모스의 딸 레우코테아를 향하게 된다. 클리티아는 레우코테아를 질투하여 그녀의 아버지에게 그녀가 순결을 잃었다고 고백했고, 오르카모스는 그런 딸을 산 채로 매장하게 된다. 헬리오스는 레우코테아를 구하려 태양 전차를 타고 내려왔지만 이미 그녀는 생을 달리한 후였다. 헬리오스는 슬퍼하며, 그녀의 몸을 향기로운 향료로 바꾸고, 그것을 태양 전차에 올려 하늘로 가져갔다. 클리티아는 자신이 버린 계획에도 불구하고 헬리오스가 마음을 자신에게 돌리지 않음을 탄식하며, 아무것도 먹지도 마시지도 않은 채, 바위 위에서 온종일 헬리오스만 기다리다가 결국, 클리티아의 다리는 땅 속에서 뿌리가 되었고, 얼굴은 해바라기로 변하게 되어, 헬리오스가 모는 태양 전차 쪽으로 얼굴을 향하게 되었다는 이야기다. 이 신화는 태양 숭배의 의미와 기다림, 충성, 그리고 영원한 사랑을 상징한다. 하지만 이야기 깊은 곳에 깃든 아야기의 본질은 ‘욕망’ 이라 볼 수 있다. 작가 왕영미는 이 욕망에 대하여 상징과 형태구축, 표현행위를 해바라기에 모두 담아낸다. 욕구와 다른 욕망의 해석 매슬로우는 인간의 욕구(needs)를 다섯 단계로 분류했다. 먹고, 입고, 성욕을 느끼는 생존의 욕구, 이런 것들을 안정적으로 받는 안정의 욕구, 사람들과 관계를 맺고 싶어 하는 관계의 욕구, 관계를 맺는 사람들에게 존경을 받고 싶은 존경의 욕구, 자신이 차별적 존재임을 실현해보고 싶은 자기실현의 욕구가 그것이다. 안정에 대한 욕구도 마찬가지다. 안정된 상태가 깨지면 사람들은 이것에 대한 결핍을 느끼고 이것을 복구하기 위해 움직인다. 존경받고 싶은 욕구와 자아실현의 욕구는 자연적으로 결핍의 상태가 생기지 않는다. 자신이 주체적으로 결핍의 상태를 만들어내야 욕구가 생기는 생성의 욕구이다. 이들은 자기가 이것들을 선택해야 한다는 점에서 욕구보다는 차라리 욕망에 가깝다. 그렇다면 욕망은 무엇인가? 라캉은 사고 체계에서 소쉬르의 언어구조와 프로이트의 무의식 세계의 성 본능을 결합하면서 <무의식은 언어처럼 구조되어 있다>라는 이론을 만들어냈다. 그는 주체의식 단계를 세 단계로 설명하는데, 대상을 실재라고 믿고 다가서는 과정을 상상계로, 그 대상을 인지하는 순간을 상징계로, 욕망을 따라 그 대상을 찾아 구하는 것을 실재계로 보는 것이다. 이 때, 주체의 욕망을 충족시킬 것처럼 보이는 대상 즉, 대체가 가능하리라 믿는 단계가 은유이다. 이 부분은 프로이드의 오이디푸스콤플렉스 이론을 수용하면서 더욱 분명해진다. 아기가 엄마를 욕망의 대상으로 인식했지만, 어머니 욕망의 대상이 아버지임을 자각하고 아버지를 동경하게 되는 것, 즉 아기 자신의 욕망을 충족시키지 못하고 다시 그 다음 대상으로 자리를 포기하고 바꾸는 것이 환유이다. 그러므로 욕망 역시 언어처럼, 그리고 무의식처럼, 은유와 환유로 구조되어있다고 설명한다. 또한, 그는 욕망이 인간을 살아가게 하는 동력이라고도 말한다. 라캉은 주체를 결핍으로 보고 욕망을 환유로 본다. 그것은 주체를 대상에 대한 왜곡된 집착에서 벗어나게 하고 스스로도 어쩔 수 없는 오인의 구조를 지니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하여 <타자의식>을 갖게 한다. 이 타자의식이 라캉의 이론의 백미이면서 문학, 정치, 사회, 여성이론으로 확장되는 근거가 된다. 스스로가 데카르트적인 <사유하는 주체>가 아닌 <욕망하는 주체>임을 인정할 때 인간은 실재와 불행하지 않은 만남을 이룰 수 있다고 라캉은 말한다. <보여짐>을 강조하는 것이 라캉의 ‘욕망하는 주체’이다. 여기서 응시(gaze)는 주체가 상상계에서 상징계로 들어서듯 바라보기만 하는 것에서 보여짐을 아는 순간 일어난다. 자신이 세상에 의해 보여짐을 의식할 때 주체는 고립과 소외를 벗어나게 되는데 그것이 바로 「타자의식」이고, 그것은 바로 사회의식으로 확장을 이룬다. 헤겔의 인정 욕망이나 프로이드의 원망 충족, 그리고 라캉의 ‘타자의 담론’ 욕망과는 다르게 질 들뢰즈는 오히려 욕망하기 때문에 결여나 결핍을 느끼는 것으로 파악했다. 즉, 유물론적 입장에서 스피노자나 니체가 주장했던 것처럼, 욕망은 결핍을 인식한 심리 활동이라기보다 무의식적 에너지의 능동적 작용으로 보았다. 따라서 들뢰즈는 오이디푸스콤플렉스 이론에 동의하지 않는다. 어머니를 욕망하는 아이의 상상계에 아버지가 개입하면서 거세불안에 히스테리를 겪는 아이가 결국 아버지의 존재를 인식하고 사회적 규범에 순응하면서 상징계에 진입한다는 이론을 거부하는 것이다. 이유는 어머니를 욕망하는 것이 아이라기보다는 오히려 아버지를 상징하는 어른의 죄의식을 아이에게 덮어씌우는 것이고, 욕망은 근본적으로 물질적 에너지의 능동적 흐름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러면서 그는 욕망의 오용은 스탈린이나 히틀러와 같은 파시즘을 낳았지만, 욕망의 흐름을 억하고 통제하는 과정을 코드화 영토화라고 보았을 때, 자본주의 속의 은밀한 탈 코드화, 탈 영토화의 극한에서 발동하는 파시스트적 움직임에 더욱 집중했다. 주목할 만한 부분은 사회주의이건, 자본주의이건 억압하려는 욕망과 억압당하고자 하는 욕망은 공통으로 작동한다고 보았다는 것이다. 욕망을 품은 해바라기 미학 위와 같이 해바라기의 기원과 욕망에 관하여 개략적으로 언급한 이유는 왕영미 작가의 해바라기가 욕망과 결부되어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통념상 어른은 생리적 나이만을 기준으로 청소년과 구분하는 것이 아니라, 시회질서와 규범에 순응하는 교육을 받고 사회 구성 일원으로서 인간의 본능을 최대한 절제할 줄 아는 성인을 말한다. 그러나 인간은 각 시절마다 내적 욕구와 욕망의 도전을 받는다. 즉 본능과 감정적 욕구와 동경의 대상이나 사회적 인정에 대한 욕망에 들끓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욕구와 욕망 사이, 그리고 그 언저리에서 우리는 항상 갈등하게 된다. 작가 왕영미가 표현한 해바라기의 기표와 실제 내용은 그 수 많은 욕구와 욕망을 담고 있다. 유소년기의 행동 규범, 청소년기의 사회적 교육, 청년기의 사회 조직화 교육의 과정에서 겪는 인간의 심리상태를 해바라기의 형상에 구석구석 상징화한다. 또한, 각 시기마다 지속해서 느끼는 끝 없는 욕구는 욕망으로 향하고, 어느 순간 욕망은 점점 사그라들고 사회의 이념과 통념 뒤에 숨어버리게 된다. 이때, 인간은 무채색 인간이 된다. 왕영미 작가의 각양각색의 색을 품고 색을 발하는 해바라기가 끝없는 욕망을 좇는 인간을 표현하고 있다면, 눈 온 풍경의 고개 숙인 단색조의 해바라기는 그러한 지난한 세월 속에서 스스로 세상에 동화하려 길들인 자신과 또 다른 인간들의 모습을 표현한 것으로 보인다. 해바라기 형상 속 변주 왕영미의 해바라기는 형식상 다분히 표현주의적 성격이 강하다. 왕영미 작가는 그림을 그리기 전 자세한 밑그림을 그리지 않는데, 그 까닭은 계산적이고 계획된 표현을 피하기 위함이며, 작가 자신이 구현하고 싶은 대로, 그 때의 감정을 충실히 담아내고 싶기 때문이다. 그래서 더욱 손이 가고 작업 시간도 길어진다. 그렇게 즉흥적으로 던져진 터치들은 실제 해바라기의 형태와 단단한 조합을 이뤄내면서 화면을 구성한다. 그러나, 왕영미 작가의 작품은 직접적으로 인식할 수 있는 형태와 색 표현 뒤에 감춰진 작품제작 과정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즉흥적인 작품 제작은 고도의 집중력과 숙련된 필력을 요한다. 그것은 마치, 운동선수가 본능적이고 자동반사적으로 몸을 놀리는 이치와 비슷하다. 작가가 표현하고자 하는 대상을 표현할 때, 자신을 붓에 맡긴 채 잠재적 본능을 맘껏 풀어 놓는 것이다. 이 때, 표현하는 행위와 구현하고자하는 대상은 한 점에서 만나게 된다. 작가는 이 접점을 ‘욕망하는 점’이라 표현한다. 즉, 잠재적 욕구(Needs)와 욕망(Desire)이 행위로 발산되고, 그 행위가 표현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그러면 왕영미 작가의 욕구는 무엇이고, 욕망은 어디로 향하는 것일까? 그 답은 의외로 일반적이고 소소하다. 중년 나이의 여느 성인들과 비슷한 욕구와 욕망이다. 이를테면 60~80년대 분위기의 교육 과정에서 받은 억압과 규범의 틀이 어느새 당연히 삶의 방침이 되어버린 통념에서 비롯된 해방구가 바로 화면이라 생각하면 될 듯하다. 공자와 맹자의 유교 사상이 통치이념이 되고, 통치이념은 군신유의와 부자유친, 그리고 삼강오륜 사상을 낳으며, 그 사상이 교육되어 유교 사회의 질서를 만들었다. 하지만 그 이념 속에 가둬진 일탈 욕구와 사회적 욕망은 그대로 잠재해 있기에, 그것들이 분출되어 그 에너지가 해바라기를 만들어낸 것이다. 어찌보면 해바라기의 부분 부분을 해체하면 각양각색의 욕망이 명료하게 개체화되는 것이고, 이 사실은 다시 조합하여 새로운 입방체를 구조화할 수 있다는 점에서 후기 구조주의(해체주의)의 요소를 담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또한, 그러한 성질이 국화과에 속하는 해바라기의 특성과 연결된다. 해바라기 잎과 해바라기씨를 보면 유기적 구조를 이루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 모양새는 마치, 나와 사회 속의 관계망처럼 촘촘히 연결되어 있으며, 잘 다듬어져서 맞물린 톱니바퀴처럼 보이기도 한다. 즉, 왕영미의 해바라기는 형식, 과정, 방법, 내용면에서 즉흥 변주를 이룬다. 이번에 선보이는 작품들은 그동안의 작업 변화를 한 눈에 아우른다. 단순히 해바라기 꽃의 일차적 감흥을 그려낸 것이 아니라, 형상 속에 내재한 다양한 사고를 일목요연하게 정리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또한, 이번 전시에서 한 단락 짓고 다음 작업으로의 전환을 예고하면서 다음 단계의 작품을 기다리게 만든다. 글. 양평군립미술관 학예실장(예술철학박사) 이 홍 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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